[성명]

 

 

현 KBS 상황에 대한 KBS노동조합 비대위 입장

     

     

KBS는 고대영 사장이 해임된 뒤 과도기를 맞았다. 지금은 KBS 구성원들이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에 매진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도 촉박하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당 의원 전원 등 의원 162명이 현재의 KBS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출 방식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공동 발의했던 방송법 개정안을 철저히 외면한 채 새로운 사장 후보를 물색하고 있다. 고 전 사장이 해임되기가 무섭게 벌써부터 사내 안팎에서는 차기 사장 후보로 여러 인물이 거론되고 있다.

     

권력에 굴종한 KBS의 아픈 역사는 방송법 개정안 처리 같은 방식 외에는 치유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그 이유는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의 제안 설명에도 아주 잘 명시돼있다. 세월호 유족의 KBS 항의 방문으로 촉발된 길환영 해임 사태, 전임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이 된 최순실 게이트 낙종 등을 겪은 뒤 KBS 구성원 주도의 적폐청산은 이전의 투쟁들과는 달라야 한다.

     

이제는 KBS 구성원 모두가, 소속된 노조와 상관없이 하나가 돼 공영방송을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겨온 정치권과 맞서 싸워야 한다. 진짜 싸움에 나서야 할 때이다. 고대영만 나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방송법 개정안은 지난 9년 동안 이전 정권들이 KBS에 저지른 만행을 견제할 수 없었던 민주당이 야당으로서 절감했던 한계와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는 독단과 독선을 가능케 하는 지금의 잘못된 지배구조를 그대로 방치한 채 또 다시 후임 사장으로 누가 오는지에 관심을 쏟는다면 그 것은 KBS의 진정한 변화를 바라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집권당이 된 더불어 민주당은 물론 자유한국당도 방송법 개정안 처리에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서로를 향해 ‘내로남불’이라며 싸울 뿐이다.

     

지금 우리 내부 상황은 어떠한가? 최다 조합원을 거느리게 된 본부노조의 일부 구역들은 고대영이 임명했다는 이유로 부장급 이하 간부들까지 적폐로 규정하면서 그들의 사퇴를 요구하며 사실상 제작거부를 이어가고 있다. 프로그램 파행이라도 최소화해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동료들에게까지 손가락질 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정상인가? 보도국의 경우 어제 발생한 밀양 화재 참사에 몇 명이나 동원했는가? 특보는 제때 들어갔는가? 특보 체계는 제대로 갖췄는가? ‘올바른 보도’를 말하려면 적어도 보도 자체에 대한 직무유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KBS 노동조합의 이 같은 입장이 현재 남아있는 간부들을 모두 용서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고대영 체제의 이너서클에서 월권을 자행하며 KBS를 망친 몇몇 적폐 간부들은 하루 속히 스스로 물러날 것을 촉구한다. 그 것이 당신들이 회사와 후배들을 위해 행할 마지막 일이다. 누군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며, 지금의 이 요구가 마지막 경고이자 배려임을 밝힌다.

     

파업 이후 그어진 경계선에서 갈라진 채 반대편에 서있는 동료들을 보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일했던 동료의 얼굴이 더 많이 보일 것이다. 고대영이 사장으로서 단행한 인사를 통해 보직에 임명된 것만으로 ‘적폐’라는 딱지가 붙게 된다면 지난 2년간 고대영의 KBS에서 보직을 맡거나 보직은 맡지 않았더라도 하루하루 현업에서 열심히 일해 온 우리 모두가 적폐 아니

면 적폐와 같이 일한 공범자가 된다. 물론, 그 동안 구성원들이 고대영이 좋아서 그의 밑에서 일한 건 아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조직은 최소한의 원칙과 질서라는 것이 있다. 본부노조의 요구대로 지금 부장급 이하 간부들까지 모두 사퇴한다면 회사의 운영은 누가 맡겠다는 말인가? 이제 내부를 겨냥한 공격은 멈춰야 한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료조차 적폐 프레임에 가둬둔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금과 같은 갈등과 반목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방송법 개정안 처리에 같이 힘써주지 않아도 좋다. 다만, 본부노조가 관철하고자 하는 여러 개혁 작업들조차도 어느 정도 조직 분위기가 안정돼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업으로 인한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하며 그 것이 최다 조합원을 거느린 노조 지도부로서 해야 할 도리이다.

     

사측에도 요구한다. 팀장급 간부부터 사장대행을 맡는 부사장까지 간부로서 역할을 할 날이 많지 않다. 짧은 기간이지만 사내 어떤 세력의 압력에도 굴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끝까지 원칙을 지키는 소신 있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훗날 평가받는 날이 올 것이다.

     

꼭 방송법 개정안 처리 관철과 같은 목표가 아니더라도 KBS는 공영방송, 언론사이기 전에 하나의 공동체다. 우리끼리 계속 반목해서는 절대 두발로 전진할 수 없다.

     

KBS 노동조합은 방송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투쟁과 함께 파업으로 인한 내부 갈등을 치유하는데 모든 역량을 쏟을 것임을 밝힌다.

          

          

2018.01.27.

KBS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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